70년대 초반에 되면은 아주 이제 위험한 상황이 이렇게 됩니다. 군을 유지하려면 경제 재건을 해야 되고, 경제를 재건하려면 군을 감축해야 한다. 국가의 사정은 진퇴양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어찌 난관이 한 가지 끝이야. 박정희 대통령이 선거를 합니다. 근데 당연히 아는 거겠지만, 제가 하나씩 좀 기본을 말씀드릴게요.
오히려 경쟁합니다. 온리 설명하자면 맞아요. 군을 장악해 가지고 바로 대통령 된 거 아니에요.
선거했습니다. 아, 시스템 다들 참고해서 당선된 사람이 앞쪽으로. 그 다음에 이제 윤보선 한 번 더 얘기입니다.
그 다음에 김대중 일단 뭐 얘기입니다. 한 말이 많은데. 그 다음에 저는 보면은 8대, 9대 선거가 문제에요.
저 바로 그 유명한 유신체제입니다. 유신체제가 뭐죠? 어떻게 보면 헌법을 철저히 파괴해요. 왜?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내가 임명할 수 있으니까.
대통령이 법관을 내가 임명할 수 있어요. 그 다음에 세 번째 거죠. 대통령의 중임제를 철폐했습니다.
네 번째는 뭐죠? 직선제를 간선제로 바꿨어요. 이것만 보면은 이게 엄청난 보수, 고파들도 숨이 턱 막히면서 되도록이면 이런 논쟁이 일어나는 자리를 피하고 싶죠. 이걸 어떻게 변호할 수 있을까? 근데 여기서 단언할 수 있습니다.
유신이 없었다면 저는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하지 않았을 거예요. 유신이 없었으면 박정희 체제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유신이 없었으면 대한민국은 지금도 이 '코리아의 봄'을 하고 있을 거예요.
죽창 들고 촛불 들고 계속… 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고 나서 경제개발이 왜 왔냐면은… 그렇게 있습니다. 참고로 이승만 대통령이… 아, 제가 그때 말씀드렸죠. 뭐 맥아더 라인 없애고 이승만 라인 있고, 그다음에 뭐 어제 일본이랑 국교 정상화 같은 거 거부하고 막 그랬는데… 이승만 대통령이 그 어떤 막장 드라마보다 더 막장이었냐면은, 국회 정상화, 한일 국교 정상화가 될 것 같냐고 물어봤는데, 아, 여기 사는 사람들이 다 죽고 40년이 지나도 될까 말까 할 걸 그렇게 얘기했어요. [1]왜 그랬을까요? 민족주의 감정이 너무 심해서… 그러면 당시의… 아, 지금은 우리가 원조를 주는 나라죠. 당시 대한민국의 원조를 기대할 수 있는 나라는 두 군데밖에 없습니다. 미국이랑 일본.
바뀌었어요. 일본은 아예 안 돼요. 1965년에 국교 정상화 하기 전까지 박정희 대통령이 일본한테 한 푼도 끝까지 못 받고, 미국한테 그나마 받아야 되는데… 케네디 정부가 박정희 대통령 할 때… 차원이 다른… 그 대한 입장이 뭔지 아십니까? 물론 우호적이었으니까… 못 느끼게 한 판 되는 것보다 낫다, 이걸… 이러니까 이제 군부가 당시 엘리트였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때 만들어진 그 1… 뭐 프로그램이 있어요. 그래서 1950년대, 1950년에서 1957년까지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최고의 엘리트들이 미국 유학을 가서 교육 바꾸겠습니다. 그중 한 명이 박정희 대통령입니다.
5·16 군사정변 집단이 왜 쿠데타를 일으켰냐면, 당시 군인은 전투만 하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국가의 행정 조직도 알고 있고, 국가가 나서서 경제 개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고, 민간 기업이 어떻게 성장하는지도 알고 있고, 교육 제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군 엘리트들이 최고의 리더십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도 처음에는 반대했습니다. 군부가 재등장했다는 것, 한반도가 넘어가거나 넘어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 근데 거기는 민주주의의 나라이기 때문에 군부가 등장한 나라의 경제를 운영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박정희 대통령이 성공적으로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대통령이 된 다음에 미국에 갔을 때, 미국 측에서 "뭐 하는 거냐? 공업 같은 소리 하지 말고 농사나 지어라"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몇 개월 지나 한국의 경제 방안을 발표합니다. 국무부에서 "수출 같은 거 할 생각하지 말고 내부에 집중하라"는 말을 합니다. 이승만 때는 달라진 게 없어요.
언제 한번 박정희 대통령과 투쟁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당시 CIA의 보고서를 보면, 이 나라는 내부적인 권력 다툼 때문에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습니다. 학자들은 뭐라고 말했죠? 대한민국의 경제 기적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다고 예측했습니다.
미국이 사실상 사형 선고를 내렸나요? 그런데 미국 원조 때문에 박정희가 성공했다는 건… 박정희 대통령이 어떻게 그 차관을 얻었는지 그 스토리를… 그러자면 한도 끝도 없는데, 진짜 주먹구구식으로 했어요. 그 정주영 회장, 이병철 회장 시켜 가지고 등 떠밀고 막 될 때까지 해 가지고… 막… 예, 정주영 회장 당시의… 막 한번 각하 당시에… 그 영국의, 지금 프리미어리그 영국 축구 다들 아시죠? 그 프리미어리그 거기에 보면 최대 후원자가 누구예요? 바클레이 은행입니다. 그래서 거기 돈이 많아요.
영국 은행이기 때문에 거기에 돈이 많고, 그다음에 당시 박정희 때 그리스에서 선박을 잘 만들었습니다. 그럼 박정희 대통령이 조선업으로 넘어가야 되는데… 야, 그 정청 중 넣긴 해 봐야 보냈어요. 보냈는데 영국의 바클레이 은행장한테 부탁하신 거죠.
우리가 뭐 아무것도 없긴 한데 돈을 좀 빌려주면, 그리스 전문가들을 데려다 스킬을 배우게 해서 갚겠다, 잘 만들어 가지고… 그 회장이 뭐 말도 안 되잖아요. 뭐 아무것도 없는데 조선을 해 봤어야죠. 안 해봤다 이럴까요? 알아요.
그건 한국도 왔어요. 박정희 대통령이 어떻게 해서… 물어볼까요? 그저 안 된다 안 될까? 될 때까지 다시 가 가세. 그래서 그분이 제 그리스를 먼저 가지고 우리가 이런 이런 계획이 있으니까 하겠다.
될까요? 아래 반도체 달라고 할까요? 정종의… 저게 어떻게 얘기해 줄 아세요? 저… 넣… 다들 아시잖아요. 거북선 얘기도 했는데 우리가 옛날부터 거북선 만들던 나라인데, 그 기질을 발휘해 가지고 그 배를 만들려면… 이건 뭐야? 이거 둘러싼 느낌, 뭐 큰 거… 그 배 엄청 크게 끝. 그가 일단 어제 솥을 있잖아요.
어쨌든 간에 그게 먼저 있고 그 다음에 배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근데 얼마나 급하면 박정희 회장이 그거를 동시진행, 이 차를 만들면서 동시에 배도 만들어요? 그런 계획을 구상할까? 오케이, 거북선 얘기 끝. 해 가지고 해주겠다, 도장을 받으니까 그걸 갖고 뛰어가 가지고 이제 그 바클레이 은행 장악했다 하는 겁니다.
내가 그리스 선박 대장한테 이걸 그 허락을 맡았는데, 돈을 내놔라. 그래 가지고 돈 빌려서 그래서 현대 조선업이 시작된 겁니다. 울산의… 저 울산 사람의… 그 잘 알아요.
저도 말을 막 그랬습니다. 가지고… 호나… 그래서 나오지 못해 가지고 왔어요. 어쨌든 60년대 이만큼 어렵고, 마오쩌둥 팔고, 머리카락 팔고… 마… 이럴 때였다. [2]자, 국제정세 다시 넘어갈게요. 아, 모택동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모택동이 그 대약진 운동을 하자, 대약진 운동하고 거기서 한 사천만 명 정도 죽습니다.
왜냐면 지타 실험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농업과 공업… 꽉… 이런 지식산업을 민간한테 맡겨야 되는데, 몇 천만 인구를 그냥 다 농장에 집어넣고 공장에 집어넣었던 거예요. 단순하게 생각할 거니까 많이 사람을 집어넣으면 많이 물건이 나오게끔 생각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생산성… 이런 개념도 없고 그냥 100만 명을 넣으며 점차 백만 명이 나오게 제가 좀 바꾸게 넣었는데, 농사는 농사대로 안 되고 공업은 공업대로 안 돼서 말라 맀어요. 전망 해가지고 4천만 명이 죽어 버렸어요. 그러니까 실각을 해가지고 등소평이 그때부터 등장하죠.
근데 이제 그 그때 문화대혁명을 1966년에 일으킵니다. 그러면은 모택동이 젊은 20대 병사들을 이제 선동해 가지고 한 게 뭐냐면, 자, 저 혁명을 반대하는 전근대에 속한 것들과 서구 문명의 영향을 받은 모든 인간들을 죽여라 이래 가지고 1차 조치가 뭐냐면, 중국의 전통 요리도 못 먹게 하고요, 농구, 축구 같은 것도 못 하게 하고, 왜 사향이라고 그 다음에 티베트에 있는 이 불상들을 다 녹였습니다. 근데 최악의 행동보다 기독교를 완전히 말살시켜 버렸어요.
서구 문명의 요람이라고. 그리고 이제 애들이 전통에 속한 그 가족 제도를 다 틀린 거라 해 가지고 자기 엄마 아빠를 죽이고, 학교 선생들을 죽이고, 의사들을 다 죽입니다. 제도에 속한 모든 것들은 기득권의 꾸릴 억압하는 세력이라.
그게 그 피비린내 나는 숙청 사업 때문에 4천만 명, 그 숙청 작업 때문에 또 다시 1천만 명이 죽고, 그래서 중국 공산당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말이 그래서 나오고요. 어쨌든 1966년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데, 이게 도대체 박정희와 무슨 상관이냐? 이때가 바로 중국이 소련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시기입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해요.
그러니까 내부적인 정리도 하는데 더 중요한 것은 소련이랑 중국이 공산주의로, 전 세계 공산주의가 하나의 일원으로 "망국의 노동자의 단결하라, 망국의 노동자의 공통된 대의는 폐쇄된 국경도 없다" 기독교식으로 보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안에서 하나 되자는 것과 똑같은 이론인데, 그게 이제 소련이랑 중국이란 긴 국경을 맞대고 있으니 분열이 일어나니까, 그때 닉슨과 키신저가 뭘 했냐면, 베트남 전쟁 때 힘들었는데 중국이랑 딜을 해서 중국이 소련을 압박하게 만든 거예요. 중국에 해달라는 거 다 해주는 조건으로요. 그럼 어떤 국제 질서가 만들어지죠? 중국이 제일 골치 아파하는 게 대만과 베트남에 있는 미군입니다.
나가라고요. 그래서 키신저가 "오케이, 내가 나갈 테니까 네가 소련을 압박해" 이렇게 한 거죠. 마치 지금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일본, 호주, 한국을 이용하는 것처럼, 그때는 소련을 압박하는 게 주된 목적이니까 중국을 이용한 거예요.
기브 앤 테이크죠. 철수라는 거. 그래서 우리나라 주한미군이 실제로 3분의 1이 1년 만에 철수했습니다.
그때가 유신 바로 전이에요. [3]그래서 닉슨 독트린은 굉장히 공과 과가 많기 때문에, 장점과 단점을 좀 말씀드리자면… 이제 박정희 대통령을 보면 이승만 대통령이 미친 짓을 어설프게 따라 한 것 같은데… 뭐 이제 궁금하신 분들은 이승만의 데미 투쟁을 보시면 됩니다. 2분의 인연이 있죠. SFR(아마도 SEATO, 동남아시아 조약기구를 의미하는 듯) 시스코에서 68년 이 가격대를 만났을 겁니다.
박정희 대통령한테 분명히 닉슨, 혹은 닉슨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 없다고 했어요. 근데 돌아서자마자 일주일 만에 비공식적으로, 혹은 일방적으로 주한미군의 전면 철수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려 했어요. 그러니까 박정희 대통령 모르게요.
닉슨 독트린의 그 특징은 뭐냐면요, 기존의 동맹국을 배신할지라도 중국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 가지고 소련을 견제하는 데 앞장서자는 게 골자입니다. 이제 그 박자에 대청역(맥락상 잘못된 표현으로 보임. 다른 표현으로 추정해야 함) 뭔가 좀 심상치 않게 굴러가는 데, 근데 그 조직 넣어서 어디서 받냐면은 베트남에서 미군이 점점 떠나가는 것을 본 거예요.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 닉슨 조미(조미는 아마도 조약, 협정 등을 의미하는 듯) 듣게 안 된다고 생각하고, 그때 제안 모습으로 큰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다음에 우리나라의 무전(무장) 공비가 청와대에 침투해요. 김신조 사건입니다.
그 68년 있었던 일을, 그다음에 그 순차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죠. 미국의 푸에르토리코(추정)가 북한에 의해 나포되고, 그다음에 지금 저 국립현충원 있죠, 저기 뭐 늘 무장공비들이 와 가지고 폭파하고, 지금도 폭파하다 지들이 맞추고 막 그런 일이 생겨요. 그리고 제일 치명적인 것은 뭐냐면, 당시 1971년 대선 때 박정희 대통령의 상대편이었던 김대중이 내용 공유하게 했던 뭐냐면은 향토예비군을 폐지하게… 향토예비군을 폐지하겠다고.
예비군, 두 번째는 노동자들이 기업의 경영에 간섭할 수 있게 노동 경력을 보내주겠다. 세 번째는 대중 경제론을 해 가지고 박정희 시대의 수출 주도형 경제 시스템을 거꾸로 돌려 가지고 농업 중심으로 바꾸겠다. 이렇게 하면 박정희 대통령의 적이 얼마나 많아지는 거죠? 지금 미국, 그 다음에 닉슨 대통령이 이제 금본위제를 폐지함으로써 이제 달러 가치가 갑자기 엄청 하락합니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찾아오고, 전 세계적으로 경제 위기가 오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제 박정희 대통령이 취한 승부수가 뭐냐면은, 기업이 그때 이제 사채가 많았어요. 근데 그 사채를 완전히 동결시키는 거예요.
쉽게 말하면, "기업 파트너들, 돈 갚지 마. 너희가 이제까지 빌리고 쓴 돈, 갚지 마." 근데 그때 당시 기업한테 사채 준 사람들이 누구였냐? 부패한 국회의원들이었어요. 사채를 줬습니다.
그럼 박정희 대통령이 취한 조치는 뭐죠? 국회의원들에게 이렇게 따져 얘기를 한 거예요. "너 그거 합법적으로 얻은 돈이야? 혼자 돌려줄게. 근데 너 그거 합법적으로 한 게 아니라면 국세청에서 조사 들어갈 테니까 각오해." 그 다음에 "니가 갖고 싶으면 기업한테 투자를 해라.
그걸 투자 명목으로 투자를 할 수 있으니 늘 귀를 기울이겠다"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전 세계적으로 범람하는 경제 위기 속에서 기업을 지키고, 그 다음에 시장 경제가 1970년대부터 시작된 제가 제일 처음에 설명드렸죠. 아까 수출 공업화, 70년대 초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1960년대부터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에 썼던 것이 1970년대에 시작되는 거예요. [4]근데 그 민간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는 것이 이제 시작되고 있는데, 그리고 닉슨 독트린으로 미군이 철수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그리고 65년에 모택동이 김일성한테 베트남 식으로 남만을 점령해라, 이런 게 나온 상태, 거기에 무장 공비 쳐들어오고, 그때 문화 대혁명이 일어난 상태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내건 승부수는 뭐다? 김대중 같은 정치인들이 나서지 못하도록 전면 봉쇄를 하고, 국회를 장악해 버리고, 어떤 사람도 "아, 대한민국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수출과 성장을 통해서 민주주의의 기초 조건인 경제 성장을 할 수 있도록, 그리고 닉슨 독트린과 상관없이 이 나라가 부국강병해질 수 있도록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진다"는 조치를 선언한 다음에, 서울대 학생들이 막 데모하고 난리가 나니까 "아, 역사가 판단할 테니까 내부의 잡음은 침묵하라" 이렇게 하는 거죠. 제가 아까 권력의 속성을 말씀드렸죠. 독재자가 있는 것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있어요.
그 얼룩은 돈으로도, 시간으로도 절대 없어지지 않아요. 그러면 내부적인 싸움, 그 잡음이 잠잠해진다는 겁니다. 그렇죠.
대한민국의 70년대로 적나라하게 얘기하자면, 요 성장해야 될 때, 다양성을 말아야 될 때, 나는 건 왜냐면 민주주의가 자리 잡기도 전이니까. 박정희는 그 권력과 정치, 그리고 경제 3개가 나아가는 그 본질적인 방향성을 몸소 보여줬죠.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이 대통령 직을 내려놓으면, 그때부터 이제 권력 다툼이 시작되겠죠.
김종필이니, 김재규니, 차지철이니… 그죠?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무너지는 거예요. 누구처럼, 미국의 힘처럼, 그저 자기네끼리 막가파 싸움 하다가 넘겨준 거잖아요, 권력을. 그렇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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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유신을 택하기까지 [그라운드씨 라이브 CLIP] #박정희 #유신체제 #상남자 #찐멋 #노빠꾸 #진퇴양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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